시놉시스
당신의 일곱 살로부터
당신은 얼마나 멀리 도망쳐왔나요?
"좀 천천히 먹어. 없어 보이게 웬 식탐이야?"
"네가 오 남매 중 막내의 생존법을 알아?"
어린 시절 배고팠던 아이는 충분히 풍족한 삶을 사는 어른이 되어서도
음식 앞에서 느긋해지지 못한다.
"너는 아무한테나 욕도 잘 하면서 왜 외국인 앞에서만 기가 죽어?"
"1학년 때 영어 선생이 내 발음 이상하다고 애들 앞에서 놀렸어."
반 친구들 앞에서 놀림 받던 아이는 평생을 영어 울렁증에 시달린다.
"당신만 자식도 아닌데 왜 그렇게 친정 일이라면 잠도 못 자고 애를 써?"
"남동생은 할머니 댁 가면 장난감 어지르면서 노는데,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설거지하고 걸레질했었어, 쓸모 있어 보이려고."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던’ 둘째 딸은 아직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가족을 위해 애쓰다 지쳐 가족을 원망하게 된다.
아픈 곳, 트라우마, 컴플렉스,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어른들의 핑계,
혹은 아직도 우리를 따라다니는 일곱 살의 나,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 배고팠던, 수치심을 느꼈던, 서러웠던 일곱 살의 아이는
우리가 멀쩡한 어른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림자에 숨어 있을 뿐
우리가 약해지는 어느 날, 다시 우리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은 아닐까.
"다 너를 비웃을 거야." "너만 결국 갖지 못할걸."
"네가 사실 쓸모없다는 걸 들키고 말 거야."
여기 저마다의 일곱 살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드라마는 묻게 될 것이다.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갖고 싶은 인형을 가질 수 없었던, 배고팠던,
사랑받기 위해 몹시도 애를 쓰던, 버려질까 두려웠던, 끝없이 비교당했던,
당신의 일곱 살로부터 당신은 얼마나 멀리 도망쳐왔나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그 과거를 지금의 우리가 다르게 대할 수는 있을 거라고.
누군가의 뜻 없는 미소를 나를 향한 비웃음으로 뒤틀어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잘 지내보자고 내미는 손을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할퀴어 버리지 않으려면,
일흔이 넘어 백발이 된 머리카락으로 부모의 무덤에 찾아가서
그땐 나한테 왜 그랬냐고 울지 않으려면,
우리는 더 늦기 전에 그 어린아이를 만나야 하지 않겠냐고.
일곱 살의 나를 힘껏 안아주고,
오해를 풀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비로소 놓아줌으로써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단단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